3월, 2023의 게시물 표시

축구를 할 때 보다 더많이 따라다녔다는 김민재 아내의 미모! 그리고 불거진 불화설

이미지
 축구를 할 때 보다  더많이 따라다녔다는 김민재 아내의 미모! 그리고 불거진 대표팀 불화설 김민재는 2020년 5월 동갑내기인 아내 안지민과 결혼했는데요 1996년생으로 25세였습니다. 아내는 비연예인으로 미모가 이뻐 큰 화제가 됐는데요 직업은 프리랜서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축구를 할 때 보다  더많이 따라다녔다고 언급했는데요.그 이유로 예쁘고 성격까지 너무 좋아서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네요 최근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1992년생과김민재가 속한 1996년생 선수들 사이의  대표팀 내 파벌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는데요. 김민재가 SNS 손흥민 글을  차단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김민재의 팔로잉 목록에 손흥민의 이름이 없었고, 손흥민 팔로잉 목록에도 김민재가 없자불화설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난 뒤 손흥민이 김민재의 계정을 팔로우했고,  김민재 또한 손흥민을 팔로우하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으로 보이네요.

약스포) 디씨인이 다시쓴 카지노 마지막화..ㄷㄷㄷ

이미지
 https://meet2.kr/lzDoSPn 약스포) 디씨인이 다시쓴 카지노 마지막화..ㄷㄷㄷ 결국 정팔이 문을 부수고 금고를 연다. 금고 안에는 어마어마하던 양의 돈과 금괴는 보이지 않고 CCTV 하나가 설치되있다. (빨간 작동 불빛이 깜빡거린다)

"왜 계속 친한척?"→"바이바이"…대학동기 전도연·유재석, 말놓으며 결국 호칭정리

이미지
  방송인 유재석과 대학 동기 전도연이  '반말' 을 하며 편한 사이가 됐다. https://meet2.kr/Ag7nBz4 왜 계속 친한척?"→"바이바이"…대학동기 전도연·유재석, 말놓으며 결국 호칭정리

개장국이 뭐에요? 이승만대통령의 대답은?

이미지
프란체스카 는 1900년생으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영부인이다.  영부인은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극히 혐오했다애완동물로 익숙한 존재였지 먹는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개는 평범한 가축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군사고문관의 애완견을 잡아 먹기까지 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영부인을  태운 차가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 정서에 익숙하지 않던 영부인은 길거리에 걸린 개장국이라 쓴 간판을 보았다  "개장국이 뭐예요?"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영부인 이대통령은, 순간 기지를 발휘해 "Dog of Bureau Chief" 라며  개장국을 거꾸로 ‘국장 개’로 답했고졸지에 개장국이 ‘국장님의 개’로 승진한 순간이다. 그 후 시내의 개장국 간판이 전부 보신탕으로 바뀌었다 한다.

후손이 없어 더 위로와 힘이 됐던 이승만 대통령의 애견 "해피"

이미지
1875년생 이승만은 후손이 없었다.대신 애견을 무척 좋아해 자주 산책을 했다. 그런 그가 1960년 사일구로 하야 할때.하와이로 떠나면서 애지중지했던 애견 해피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개가 워낙 영물이어서 그런지 주인이 이화장을 떠난 후 애견들은 밥을 먹지 않고 낑낑댔다. 하와이에서 편지가 왔다 이승만 박사가 마음을 붙여야 할 데가 있어야 하니 개를 보내 달라 당시 이승만이 키우던 애견을 하와이로 보낸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스미드 부처의 주선으로 국제연합한국재건단 소속 설계기사 디한 씨가 귀국하는 배편에 해피를 하와이에 보냈다. 미국에는 동물을 반입하려면 한 달 이상 검역소에 둬야 한다. 해피가 하와이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이승만은 그날로 개를 보러 검역소에 와 해피를 껴안았다. 그리고 검역기간 동안 매일 검역소에 나와 해피를 보는 게 낙이었다.

대통령의 애견사랑은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해왔다

이미지
 대통령의 애견사랑은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해왔다 . 대통령들은 각자의 취향과 성격에 맞는 개를 키워왔으며 ,   그들의 반려견은 청와대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   대통령들의 반려견은 그들의 인간미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     대한민국의 첫 퍼스트 독은 이승만   대통령이 키우던 개로   미국에서부터 키우던 킹찰스 스패니얼 종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진돗개 한 마리와 스피츠를 키웠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진돗개 송이와 설이를 키웠다 송이와 설이는 전 대통령 재산이 추징될 때 경매에 부쳐지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풍산개 우리와 두리는 북한에서 왔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 받은 개였다 .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 김해 봉하마을에서 보더콜리 종인 ' 누리 ' 를 키웠다 .   이명박 대통령은진돗개 청돌이를 키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주민들에게 선물 받은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를 키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진돗개 마루를 키웠으며 반려묘 찡찡이를 키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려견 4 마리와 반려묘 3 마리를 키워왔으며 잘 알려진   반려견은 토리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뒤에 통합병원으로 실려갔다.

이미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암살당한 뒤에 통합병원으로 실려갔다. 국가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망확인을 하러 나온 병원장도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알수 없도록 시신의 얼굴을 가렸다. 처음 시신을 진단한 의사들은 만들어진지 20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카시오 시계와 오래된 벨트,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양복을 보고는 이 시신이 대통령의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통합병원장이 사망확인을 하러 나왔을때 통합병원장은 그것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통합병원장은 그 직책 때문에 국가의 브이아이피들을 많이 진찰해 왔는데 그가 진찰한 브이아이피 중에 그렇게 소박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던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즐기거나 낭비하지 않고 국민들과 같은 삶을 살았다.

몸이 약해 이름까지 바꿨던 이부진

이미지
원래 이름은 이유진이었는데, 어릴 때 몸이 약해 이름을 바꾸면 건강해질 것이라는 이유로  3세때, 1972년에 이부진으로 개명했다. 그러나 이름으 바꾸었다고 해서 건강한 몸음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부진은 샤르코-마리-투스라는 유전성 운동감각신경병증을 앓고 있을지 모른다. 이건희 회장도 생전에  이 질환으로 공개 석상에서 늘 부축을 받으며 이동하는가 하면,  말이 어눌하고 손가락이 굽어지는 증세를 보였다  실제 삼성가에는 폐암과 근육병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다른 삼성가의 자손들인 CJ그룹의 이미경과 이재현도 샤르코-마리-투스로 인해  나이가 들면서 부축해 주는 수행원이나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어려운 지경임이 확인된 만큼  이부진 역시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두환은."와인 더 없냐.라며 와인을 더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김영삼은?

이미지
 전두환은."와인 더 없냐.라며 와인을 더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김영삼은? 전두환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만찬에서.김영삼에게 "경제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을 해서 나라가 절단났다. 고 비판했고김영삼은 해당 발언에 격분하며 행사장을 떠났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에서 주최한 전직 대통령 만찬에서 전두환은. "와인 더 없냐. 라며 와인을 더 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김영삼은 "니는 청와대에 술 처무러 왔나?" 라며 호되게 꾸짖었다이에 전두환은 화를 내며  집에 가버렸다 이런 일화들은 우리나라 정치사의 명장면들이다.전직 대통령들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시절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지였다.

이미지
 전두환과 노태우는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시절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동지였다. 평생 적대와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았지만, 결국 서로를 잊지 못하는 인연이었다.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군정을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선언하며 5공화국과 달라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그의 행보에 분개하며 백담사로 은둔하게 되었고, "노태우 그 놈이 대통령이라도 나한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귀싸대기 맞는다" 라고 소리쳤다. 1996년 재판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로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안 줘. "우리도 안 주는데..." 노태우가 2014년 호흡기를 꽂고 와병 중일 때. 이 사람아 날 알아보겠는가. 라고 물었고. 노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레슬링 매니아 이건희

이미지
이건희는 레슬링에 빠져 있었다.  1959년서울 사대부고 시절 전국레슬링대회에 웰터급으로 출전해 입상하기도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게 돼서 2년 가까이 레슬링을 했는데,. 연습 중에 부딪혀서 왼쪽 눈썹 부근이 찢어진 적이 있습니다이런 일은 레슬링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지만,. 어머니가 그걸 보시더니 깜짝 놀라 교장한테 찾아가 빼달라고 부탁을 했어요그래서 다음 날 레슬링부에서 쫓겨났습니다. 레슬링은 그의 경영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 없이 승리할 수 없으며  모든 승리는 오랜 세월 선수ㆍ코치ㆍ감독이 삼위일체가 돼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라 강조했다